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웨이코 포위전 (문단 편집) == 이후 == 사건 이후 빌 클린턴 행정부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영유아들이 너무 많이 죽었기 때문에 ATF, FBI는 '영아 살해자(baby killer)'라고 욕을 들어먹었고 웨이코의 복수를 하겠다는 극단적 비연방주의자들이 기승을 부렸다. 교주인 데이비드 코레시가 이 모든 사건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FBI가 죽은 아이들과 함께 이 상황의 피해자라는 주장 또한 적지 않다. 이 모든 과정에서 잡혀 있었던 인질은 신도들이 아닌 FBI였고 데이비드 코레시의 요구에 응해야 했기에 그의 극본에 선 배우였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코레시의 극본은 이미 완성되어 있었고 FBI가 이를 바꾸려 했지만 실패했다는 주장이다. FBI가 어떤 노력을 해도 이미 세뇌된 상태에서 데이비드 코레시에게 지배당하고 있던 광신도들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연방 정부의 부적절한 대처로 인해 많은 보고서가 나왔다. 대표적으론 FBI가 작전 초기 대원들의 사망에 분노하여 매우 격앙된 상태였다는 것. FBI 내부 분석가들은 비일관적인 협상시도와 심리전을 작전실패의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FBI 협상팀, ATF 진압부대를 동시배치한 현장지휘체계와 강경 진압, 온건 협상을 오락가락하는 비일관적인 행보 자체가 이미 성공을 기대하기는 힘들었다는 것. 일개 종교 집단을 체포하는 작전에 왜 군대가 동원되었는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좀 있었는데, 일단 미국 내 법 집행에서는 간접적인 군사 지원에 대해서는 합법적인 걸로 인정해 준다. 실제로 전차와 헬리콥터가 동원되었지만 직접적인 사격은 없었고, 제한적인 정찰 및 심리 작전 등 간접적인 지원만을 수행했기에 미국 법원은 문제가 없는 걸로 결론지었다. 더군다나 이 상황에선 일개 종교 집단이 아닌 저격총과 수류탄과 여러 자동화기 및 방독면으로 중무장한 광신도 집단이였다. 이 사건 이후 ATF는 진입 작전 지침을 아예 싸그리 갈아엎었다. 사건 이후 체포된 다윗가지 신자 12명 중 9명이 최대 40년형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 다만 1급 살인죄는 전원 무죄 판결을 받았고, 2급 살인죄는 일부 유죄 판결을 받았다. 또한 다윗가지 신자들의 유족들은 과잉진압에 국가에 대한 소송을 걸었는데, 법원은 최루가스 사용이 과실이 아니라고 판단해 소송을 기각하였다. 이 사건 이후 1996년에 비슷한 기독교 반정부단체인 Montana Freemen과의 공성전이 또 벌어져 제2의 웨이코 참사가 나는 거 아니냐며 대중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FBI는 웨이코 참사에 대한 뼈아픈 경험으로 노심초사했고 극도로 조심스럽게 협상을 벌였다. 결국 81일 만에 인명피해 없이 공성전은 종료되었고 Montana Freemen은 항복했다.[* 참고로 이 집단도 무기를 비축하기 위해 위조수표를 발행하고 공무원들에게 자체적으로 사형 집행 영장을 발부하는 등 다윗가지 못지않게 정신나간 집단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